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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린츠 태생으로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18살 때 교통사고로 손가락을 다쳐 지휘 전공으로 방향을 틀었다.

본격적인 지휘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1985년에 자신의 멘토인 리히텐슈타인의 남작 안드레아스 폰 베닝젠(Andreas von Bennigsen)의 충고에 따라 자신의 풀 네임 Franz Leopold Maria Möst에서 레오폴드 마리아를 빼고 프란츠가 성장했던 도시 벨스(Wells)를 미들 네임으로 새로 넣어 오늘의 이름 Franz Welser-Möst로 바꿨다.

원래 지망은 지휘자가 아닌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런데 1978년 11월 19일, 슈베르트 150주기 기념일에 슈베르트의 피아노 오중주 <송어>의 연주를 위한 장소로 향하는 도중 발생한 교통사고로 척추를 3개나 접히는 중상을 입어,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포기했다. 그리고 지휘자로 방향을 선회하고 뮌헨 음악대학에 진학, 1979년에 카라얀 국제 지휘자 콩쿠르에서 참가자 중 최연소이면서 세미 파이널리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
 
1986년(19세), 베닝젠 남작의 아들로 입적했다. 프란츠를 양자로 입적시키기 이전부터 이미 이 젊은이의 재능을 알아본 베닝겐은 프란츠를 대지휘자로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지원 덕분에 1979년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쿠르 결선에 진출했고, 1985년엔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지휘자로 데뷔할 수 있 었다. 

이듬해엔 런던 필을 지휘했고, 1988년엔 스위스의 무직콜레기움 빈테르투르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1989년엔 세인트 루이스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미국에 데뷔했고, 내친김에 애틀랜타, 보스턴, 뉴욕, 시카고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1990년엔 클라우스 텐슈테트의 후임으로 런던 필 수석지휘자로 취임했다. 30세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1992년에 베닝젠의 전처인 안젤리카(Angelika)와 결혼하면서부터 오케스트라의 오너인 런던 시가 프란츠를 왕따 시키기 시작했다. 

양부(養父)의 젊은 아내, 즉 법적으로는 어머니가 되는 여인과 결혼한 사실을 런던 상류사회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런던 시는 프란츠에게 “솔직히 최악보다 더 나쁜 뫼스트, Frankly Worse than Most”라는 별명까지 붙일 정도 였다. Franz를 Frankly로, Welser를 Worse로 바꿔서 비아냥거린 별명이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취리히 오페라의 음악감독을 지냈는데, 그 기간 동안 바그너의 ‘반지’ 전곡 등 새로운 연출로 27개의 오페라를 무대에 올렸고, 그 결과 이 오페라단이 유럽 정상급 수준으로 격상되었고, 프란츠 자신도 오페라 지휘자로서 눈부신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2000년에 음악감독직은 사임했지만 2005년 이 오페라단의 총감독으로 다시 돌아가서 2011년까지 재임하는 것으로 계약했다. 그러나 2008년에 사임했다. 빈 국립 오페라 극장이 새로운 총감독으로 초청했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외국인이 리더로 있던 빈국립오페라극장이 비로소 자국인을 새로운 리더로 영입한 이 사실은 당시 음악계의 빅뉴스였다.  

한편, 프란츠는 2002년부터 클리브랜드 교향악단의 음악감독도 겸하고 있었다. 처음 계약은 5년이었지만 두 번에 걸친 연장 끝에 2018년까지 재임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2010년 9월부터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음악총감독의 임기가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이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사령탑을 맡기는 1964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사임한 후 46년만의 일이다. “나는 뼛속까지 오스트리아인이다. 내게 독일권 음악은 자연스러운 모국어와 같다”고 말하면서 임기를 시작했다. 

이때 이 오페라단의 최고경영자인 총감독으로 도미니크 메이어(Dominique Meyer)도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다. 메이어는 파리 오페라 극장장과 스위스 로잔 오페라 극장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러나 2014년 9월 5일 프란츠는 음악총감독직에서 물러나며 이번 시즌에 예정된 모든 지휘 스케줄을 취소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프란츠는 사임의 이유로 메이어 총감독과의 의견 충돌을 꼽았다. 

오페라단의 예술적 방향에 관해 오래 계속된 의견 차이가 있었고 몇 차례 토의를 했으나 의견 차이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임이 매우 고통스러운 결정이었다며 "이에 따른 결과는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메이어 총감독은 빈 국립 오페라극장 홈페이지(http://www.wiener-staatsoper.at)를 통해 이날 아침 벨저-뫼스트 음악감독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 두 사람은 2010년 9월 동시에 취임해 4년간 함께 일해 왔다. 메이어 총감독은 "이는 당연히 큰 손실이며, 프란츠 벨저-뫼스트를 예술가로서, 또 음악감독으로서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슬프다"고 말했다. 

메이어 총감독은 벨저-뫼스트가 이번 시즌에 베르디 '리골레토'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엘렉트라'의 새 프로덕션 초연 등 적어도 34회 공연을 지휘하도록 예정돼 있었다며 적절한 대체 지휘자를 찾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벨저-뫼스트와 빈 국립 오페라극장 사이의 계약 기간은 2018년까지였다. 빈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이 의견 충돌 등으로 물러나는 일은 과거에도 자주 있었다. 말러(1897-1907년 감독), 카라얀(1956-1964년 예술감독), 로린 마젤(1982-1984년 총감독), 아바도(1986-1991년 음악감독)가 그랬다.

프란츠가 빈 국립 오페라를 처음 지휘한 것은 1987년이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로시니의 ‘알제리의 이탈리아 아가씨’를 지휘할 예정이었다가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프란츠에게 이 작품을 지휘할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10여년 만인 2006년에 이 오페라단에 다시 와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했다. 그해 12월엔 슈트라우스의 ‘아라벨라’를 지휘했다. 그리고 이 오페라단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서 프랑코 제피렐리가 연출한 ‘탄호이저’
를 첫 작품으로 지휘했다. 이후 ‘돈 죠반니’ ‘휘가로의 결혼’ ‘카타 카바노바’ 등을 지휘했다. 

프란츠는 빈 악우협회 합창단인 Wiener Singverein의 명예회원이고, 2011년과 2013년의 ‘빈 필하모니커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 1995년, 런던 필 내한공연때 소프라노 조수미와 협연하면서 한국 팬들을 처음 만났다. 

◈ 음반
런던 필 음악감독 시절에 EMI와 계약하고 음반작업을 시작했다. 1996년에 발표한 프란츠 슈미트(Franz Schmidt)의 교향곡 제4번은 그라모폰의 ‘최고의 지휘 부문’상을 받았고, 브루크너의 미사 제3번과 테 데움, 코른골트 앨범은 그래미 어워드 ‘최고의 클래식 앨범’ 후보작에 올랐다.

취리히 오페라와도 상당수의 CD와 DVD를 발표했다. 2008년엔 EMI가 프란츠의 초기 앨범들을 모아서 8장의 CD 세트를 발매했다. 2007년엔 도이체 그라모폰이 클리브랜드 교향악단이 연주한 베토벤 교향곡 제9번을 발매했고, 바그너의 가곡 앨범(솔로/ 캐나다 소프라노 메아샤 브루에거고스만, Measha Brueggergosman),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7번과 8번을 발매했다.


[ 곽근수 음악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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