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0.jpg

 

빈에서 빈필 단원은 필하모니커, 빈심포니 오케스트라 단원은 심포니커라 부른다.

 

오늘 이야기할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900년, 페르디난트 뢰베(Ferdinand Löwe)가 "가장 싼 티켓 값으로 가장 좋은 음악을 들려줄 오케스트라를 만들자"는 생각으로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 이어 빈에서는 두 번째 콘서트 전문 오케스트라로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설립했고, 그해 10월 30일에 빈 무직페라인 황금홀에서 창단 연주회를 가졌다. 

 

그리고 브루크너의 교향곡 제9번, 쇤베르크의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구레의 노래>,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젬린스키의 <인어>등 수많은 작품의 초연이 이오케스트라로 행해지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써왔다.

 

초창기엔 빈 필과 함께 빈 음악협회 대강당을 연주회장으로 사용하다가 1913년에 빈 콘체르트하우스가 건립되면서 상주악단으로 들어갔다. 뢰베는 1925년 사망할 때까지 악단의 수장으로 있었고, 재임 기간 동안 상주공연장 변경과 빈 톤퀸스틀러 오케스트라와 합병하는 작업 등 악단의 미래를 위한 단단한 초석을 쌓았다.

 

뢰베 사후엔 빈 악우협회 음악감독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사실상 상임지휘자로서 악단을 이끌었고, 1933년에 명칭을 현재의 것으로 바꾸었다. 동시에 시 당국의 보조금을 지원받기 시작해 시립 관현악단(Stadtorchester)의 위치도 갖게 되었다. 1938년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면서 악단 활동과 운영에도 제약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나치 총독은 악단을 각종 관제 행사나 군수공장 위문 공연에 수시로 동원했으며, 전쟁 기간 동안 상임 지휘자였던 한스 바이스바흐도 나치 당원으로서 악단 활동에 정치색을 입혔다.

 

2차 대전의 전황이 악화되면서 악단도 폭격 등의 위험에 노출되었고, 결국 1944년 9월 괴벨스의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강제 해단되었다. 단원들은 독일군에 징집되거나 군수공장에서 강제노동을 했고, 전쟁이 끝나고 1945년 9월에 생존 단원들을 중심으로 재창단되었다. 이듬해인 1946년에 는 한스 스바로프스키(Hans Swarowsky)가 수석 지휘자로 부임했고, 동시에 오스트리아 서부의 브레겐츠 음악제(Bregenz Festival) 상주악단이 되었다. 

 

1948년에는 카라얀이 빈 악우협회 음악감독 자격으로 악단을 정기적으로 지휘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빈 필의 경쟁 단체로 부각시키기 위해 악단을 집중 육성했으며, 특히 자신의 이름을 딴 연속 공연 <카라얀 사이클(Karajan-Zyklus)>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카라얀은 1955년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상임 지휘자에 취임하면서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고, 악단 이사회는 그 동안 모호했던 지휘자 제도를 일신시켜 상임지휘자 제도를 만들었고, 볼프강 자발리슈(Wolfgang Sawallisch)가 1960년에 상임 지휘자로 초빙되었다.

 

자발리슈는 1970년까지 악단을 이끌면서 미국과 일본 투어를 했고, 필립스에서 정기적으로 레코딩 하는 등 악단의 명성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자발리슈 퇴임 후에는 악단의 전후 최초 공연을 지휘했던 요제프 크립스(Josef Krips)가 예술고문 자격으로 1973년까지 재임했고, 이탈리아 지휘자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Carlo Maria Giulini)가 뒤이어 상임 지휘자로 1976년까지 재임했다. 

 

줄리니 사임 후에는 약 네 시즌 정도 객원 지휘에 의존했고, 1980년에 소련 지휘자인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Gennady Rozhdestvensky)가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하지만 로제스트벤스키도 1982년까지 단기간 재임에 그쳤고,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가 차례로 상임 지휘자 직책을 넘겨받아 활동했다. 

 

1986년 프랑스 지휘자인 조르주 프레트르(Georges Pretre)를 수석 객원 지휘자 자격으로 초빙했다. 조르주 프레트르와 라파엘 프뤼벡 데 부르고스(Rafael Frühbeck de Burgos)의 재임기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좀처럼 연주되지 않았던 프랑스와 스페인 관현악 작품들의 적극적인 공연으로 화제가 되었고, 페도세예프도 쇼스타코비치를 비롯한 러시아와 구 소련의 작품들을 많이 연주했다.

 

2005년부터는 이탈리아 출신의 파비오 루이시가 상임지휘자로 초빙되었다. 루이시는 2013-14년 시즌까지 재임했고, 후임으로는 스위스 출신의 필리프 조르당이 2014년 상반기에 자리를 이어받아 2020년까지 재임했다. 후임엔 2006년에 수석객원지휘자로 임명되었던 콜롬비아 출신의 안드레스 오로스코-에스트라다(Andrés Orozco-Estrada)가 2021년부터 5년간의 수석지휘자 임기를시작했다.

 

2012년 5월, 플루트 수석 주자를 뽑는 오디션에서 신시내티 교향악단 수석주자였던 재미교포 플루티스트 최나경(미국 이름 재스민 최)이 합격해 화제가 되었고, 2012-13년 시즌이 시작된 8월부터 활동했다. 하지만 불과 1년 여 만인 2013년 여름에 해직되었는데, 악단 측에서는 자신들과의 음악적 부조화가 원인이 되었다고 밝혔다. 최나경 씨에 따르면 그녀가 오케스트라 사람들과 너무 계산적으로 친해지려 했고 수습 기간에 빈 필 동기들과 모차르트 4중주를 녹음 한 것 등으로 트집이 잡혔다고 한다.


-역대 상임 지휘자

페르디난트 뢰베 (Ferdinand Löwe, 1900-1925)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Wilhelm Furtwängler, 1927-1930)

오스발트 카바스타 (Oswald Kabasta, 1934-1938)

한스 바이스바흐 (Hans Weisbach, 1939-1944)

한스 스바로프스키 (Hans Swarowsky, 1945-1947)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1948-1964)

볼프강 자발리슈 (Wolfgang Sawallisch, 1960-1970. 퇴임 후 명예 지휘자 호칭 수여)

요제프 크립스 (Josef Krips, 1970-1973. 예술 고문)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Carlo Maria Giulini, 1973-1976)

겐나디 로제스트벤스키(Gennady Rozhdestvensky, 1980-1982)

조르주 프레트르 (Georges Prêtre, 1986-1991. 수석 객원 지휘자. 퇴임 후 명예 지휘자 호칭 수여)

라파엘 프뤼베크 데 부르고스(Rafael Frühbeck de Burgos, 1991-1996)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Vladimir Fedoseyev, 1997-2004)

파비오 루이시 (Fabio Luisi, 2005-2014)

필리프 조르당 (Philippe Jordan, 2014-2020)

이외에 야코프 크레이츠베르크가 2003-2009년 동안 제1객원 지휘자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

설립 당시의 목적이 콘서트 전문 악단이었던 만큼, 빈 국립오페라 오케스트라 활동을 겸하고 있는 라이벌 악단 빈 필보다 연주회 개최 횟수가 더 많다. 정기 연주회 외에도 오스트리아 방송 협회(ORF)가 주관하는 현대음악 연주회나 청소년 음악회 등의 특별 연주회에도 출연하고 있으며,여름에는 브레겐츠에서 개최되고 있는 브레겐츠 음악제의 상설 오케스트라 자격으로 참가해 오페라나 발레 등의 무대 작품 반주도 담당하고 있다.

 

녹음 활동은 2차 대전 후부터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데, 상임 지휘자에 준하는 활동을 했던 카라얀도 몇 종류의 녹음과 영상물을 남기고 있다. 줄리니는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곡을 텔레비전 실황 방송 연주회 형식으로 녹음했고, 로제스트벤스키는 아내인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와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했다. 필립스에 상당량의 관현악 작품을 녹음한 자발리슈나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엘리아후 인발 등을 제외하면 관현악 전문 연주단체임에도 협주곡이나 오페라, 합창 반주 등의 녹음이 많은 편이다. 최근에는 방송국의 실황 음원도 음반화하기 시작했으며, 오르페오와 헨슬러 레이블 등에서 발매되고 있다.

 

활동은 활발하지만 명성이 항상 빈 필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 왔지만, 빈 필과 달리 대중 친화적인 면도 있고 레퍼토리 폭도 현대 음악을 포함해 상당히 넓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다. 여성단원 모집에 관해서도 유연한 편이다.

 


[ 곽근수 음악이야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cucucunews@gmail.com
쿠쿠쿠 뉴스, 유럽의 희망을 쓰다(www.cucucu.co.kr) - copyright ⓒ Cucucu News.
댓글달기

동영상

화제의 동영상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쿠쿠쿠 뉴스, 유럽의 희망을 쓰다 (http://www.cucucu.co.kr)
    Austria. 
    Schelleingasse 54. A-1040 Wien Austria
    Fax. +82-(0)505-960-9730 | cucucunews@gmail.com
    등록번호 142/0040  GB A 00260  | 설립일 : 2000년 7월 30| 대표: Kyung KIM

    쿠쿠쿠뉴스는 성인, 쇼핑, 일반광고 등의 모든 광고 및 쿠쿠쿠뉴스 광고주 업무와 중첩되는 글의 게재를 불허합니다
    Copyright ⓒ 2000-2021 Cucucu News All right reserved
    Cucucu News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